우당탕탕 미국간호사로 살아남기

23년 11월) 미국 병원, 죽음에 대한 문화차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얌얌외노자 2023. 11. 23. 14:50

 

미국 병원에서 일하며 여러 가지 문화차이가 있었고 그에 대해 블로그에도 "미국간호사로 일하며 느낀 문화차이-컬처쇼크"로 다섯 편 정도 적었었는데 이번에 이와 관련 또 새롭게 느낀 부분이 있어 써보려고 한다.

문화차이 포스팅은 아래 포스팅참고!! (재미있음 ㅋㅋ)
 

 

미국 간호사로 일하며 느낀 문화차이, 컬쳐쇼크 1 -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미국에 와서 아 정말 한국이랑 다르다고 느낀 게 참 많다. 그런 부분을 차례대로 포스팅해 볼까 함! (지극히 주관적인 컬처 쇼크!!) 그중에 단연코 1번은 바로 병원에서의 음료와 간식들의 개념이

nurseyamyam.tistory.com

 

 



나이트 근무 중에 차지널스가 와서 조심스럽게 “너 한국어 할 줄 알지??”라고 물었다.
맞다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중환자실에 환자가 있는데 가족들이랑 얘기하는데 뭔가 문제가 있나 봐... 네가 가서 좀 도와줄 수 있어??”
"응 물론이지 ㅋㅋㅋ 내 전문 한국어!ㅋㅋㅋㅋ"



프리셉터 중이었고 오리엔티가 있어서 오리엔티에게 말하고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환자는 CPR 후 ROSC 된 이후였고 와이프가 함께 있었다.
내 환자가 아니어서 정확한 히스토리까지는 모르겠으나 어레스트로 내원해서 병원에 입원한 지 3개월 정도 됐다고 했다.
와이프에게 들은 바로는 병원에 있는 동안 여러 번 코드블루(심정지)가 있었다 했다.

담당 간호사와 의사에게 대충 얘기를 듣기로는 환자 Code와 관련해서 이야기 진전이 없다고 했다.
환자는 Full Code로  응급상황일 때 모든 치료에 동의하는 상태인데 환자가 반복적으로 arrest가 오고, 여러 가지 검사결과와 의료진 소견으로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어 DNAR이나 CMO로 코드를 바꾸는 거를 권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미국애들이 썼던 표현
Let him go
그리고 와이프와 얘기하며 알게 된 사실, 이 문장이 문제였다.
 


사실 보호자가 완벽하진 않지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병원에는 interpreter도 있기 때문에 의료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환자 상태가 안 좋아져서 코드를 바꾸거나, 연명 치료를 더 이상 하지 않길 바랄 때 또는 거의 말기 환자들에게 이런 표현들을 쓴다.

Let him go or let her go

한국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이제 그만 보내주자.. 뭐 이런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한국에서 이런 말은 의료진이 아니라 주위 친구나 가족들이 서로에게 하는 표현이기에 이 말을 듣고 한국식으로 생각하신 그분은 어떻게 의료진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그 말에 꽂힌 것 같았다.

사실 미국에서 오래 살아도 주위에 가까운 사람이 아프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병원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표현 같았다.
 

사실 한국 응급실에서 일하면서도 많이 경험했지만 우리나라는 가족 죽음에 굉장히 소극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나의 의견)
지금은 환자들 스스로 연명치료 거부에 대해 서류 작성이 미리 가능해졌지만 10년 전에는 이런 것이 없었으니 대부분의 결정은 환자가 이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응급상황에 가족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환자를 생각해 가족들이 먼저 호스피스나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는 경우는 진짜 많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내가 응급실에서 일했기 때문에 더 못 봤던 것 같기도 하다.)

또한 한국인인 우리들은 가족의 치료를 그만한다는 것이 환자가 힘들어서, 환자를 위해 이제 그만하자라는 의미보다는 가족으로서 포기한다는 느낌과 이렇게 헤어질 수 없다는..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사랑하는 가족을 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미련으로 연명치료를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응급상황에서 가족들과 환자 본인이 결정하는 죽음보다 의사에 의한 사망선고가 훨씬 흔했던 것 같다.
 
 혹시나 내 가족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버릴 수 없기에, 그리고 나도 그 가족 입장이 되어봤기에 그것이 무슨 의미인 줄 안다.
 
 

다시 미국 병원으로 돌아와서, 담당 간호사와 의사에게 문화차이에서 온 커뮤니케이션 문제인 것 같다고 알려줬다. 
의료진이 보호자를 위로하는 과정에서 이것저것 설명한 것 같은데 그중 let him go라는 표현이 문제였던 것 같다고 말해줬다. 
한국 문화에서는 그 말을 들으면 지금 내가 내 가족을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거나 또는 내가 내 가족 치료에 적극적이지 않고 포기해 버린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보호자가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해 줬다.
이건 죽음에 대한 문화차이라 그 어떤 것이 맞다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보호자도 환자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데 다른 가족도 없고, 마지막 결정에 대해 무서워서 회피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다가 그 말에 꽂힌 것 같다고 말해줬다.

이 말을 듣고 담당 간호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고, 담당 의사도 자기가 회진 올 때마다 자기에게 무언가를 물어보거나 하는 경우보다 병실을 나가는 경우가 더 많아서 보호자에 생각을 잘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아마 이런 태도와 상황들이 의료진 입장에서는 와이프가 적극적인 치료에 대한 의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환자 Code를 바꾸려고 하는데 동의가 안 돼서 의료진 입장에서는 앞뒤가 안 맞는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런 죽음에 대한 문화 차이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에도 한국에서는 정말 대성통곡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많은 가족들이 울고 소리치고 가족에 죽음을 부정하고 했었는데 반면에 미국은 대성통곡이라는 표현보다 조용한 슬픔 쪽에 가까운 것 같다.
그들 또한 가족 or 친구의 죽음이 슬프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대성통곡하는 보호자는 한 번도 못 봤다.

 
장례식에서도 우리나라는 곡소리 난다라는 표현들을 하는데 영화에서 나오는 미국의 장례식은 그들을 추모하고 그리워하고 편지를 읽어주고 등등 정말 죽음에
대해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이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이러한 문화차이는 내가 겪어보지 않았어도 미국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인 나에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라 미국에 올 한국 간호사들을 위해 공유하고 싶었다.
 
미국인 간호사 의사들도 반대로 다른 문화에 죽음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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