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미국간호사로 살아남기

23년 10월) 냉정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따뜻한 미국 동료들

얌얌외노자 2023. 10. 25. 16:37

오랜만에 불타는(?) 나이트를 보냈다.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지면 Rapid Response를 부르는데 코드 블루와는 조금 다르다.
환자 컨디션이 떨어지거나 혈압이 떨어지거나 등등 코드 블루 상태는 아니지만 환자 상태가 급변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 Rapid response다.
그러면 MD, Resource nurse와 RT, Phlebotomy Tech들이 와서 환자를 함께 보고 필요한 처치들을 함께 한다.
 


 
그날 상황에 대해 간략히 말하면 환자 SpO2가 떨어지면서 HR도 계속 올라가고 RT에게 연락해 assess를 부탁했다.
O2도 올리고, breathing tx도 하고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RT는 suction이 필요하다며 처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의사에게 처방받고 RT가 suction을 시작했는데 환자가 토를 하며 결국 aspiration 되며 intubation까지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여튼 그렇게 intubation 하고 ICU로 전실 보내고 그
방으로 PCU에서 다른 환자를 전실받았다.
 
다음날 출근 후 ICU로 간 환자 차트 확인해 보니 한 시간 전 사망, 전날 내가 받았던 PCU환자도 그날 결국 사망했다.
PCU에서 온 환자는 연명치료 하지 않는 CMO(Comfort Measures Only)여서 타격이 심하지 않았는데, 전날 전실 보낸 환자 사망이 조금 충격적이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다른 것들이 있었는지, 내가 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는지, 그러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등등등 여러 번 곱씹고 머릿속으로 다시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내가 생각하는 우선순위에는 변화가 없었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내가 환자를 보는 동안 발생한 일들이라 그 찜찜함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후, 바빴던 나이트 전날 위에서 언급한 환자 인계 줬던 간호사에게 그날 일 들었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도 들었다고, 그러면서 이틀 동안 계속 생각이 나서 힘들었다고 했다.
남자친구한테도 말하고(한국이나 미국이나 ㅋㅋ국적불문, 간호사 남자친구들 불쌍....) 자꾸 생각이 나고 오프 내내 자기를 괴롭혔다고.
그래서 나도 그날 환자 ICU 전실 보내고 근무 내내 계속 그 상황을 곱씹었다고 하니 그날 담당 간호사가 너였냐며 고생했다고.. 네가 잘못한 건 없어, 그냥 네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야라고 말해줬다.
 
사실 이 간호사, 평소에 내가 별로 안 좋아하던 간호사였다.
백인 여자애인데 반응도 시큰둥하고 먼저 인사하는 경우 절대 없고, 뭐 Hello, How are you today? 이런 인사도 없이 인계만 주고, 해야 하는 업무적인 얘기만 하고 후루룩 가버리는 이기에... 내가 아시안이어서 그런가 하며 안 좋게 봤었다. 그 간호사도 그렇게 행동했고 내가 안 좋아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내 표정이나 태도도 랑 똑같았겠구나 싶으면서 도 나를 안 좋아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이 날 새로운 환자 그룹 인계를 받기 전에 위에서 언급한 대화들을 하고 평소와 같이 인계를 받았다.
그리고 내 업무 시작하려고 로그인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갑자기 그 간호사가 나한테 오더니

"너는 정말 너무 훌륭한 간호사야, 그리고 네가 힘들었다니.. 넌 네가 해야 할 일을 했고 고생했어, 내가 너 한번 안아줘도 될까? 안아주고 싶어"
라고 하는데 순간 띠용 하면서 엄청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가 색안경 쓰고 봤던 그 간호사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저런 말을 해주는 따뜻한 간호사였다니 놀라웠다.
 
내가 미국 와서 느낀 대부분에 미국 애들은 처음에는 조금 새침하다가도 나에 대해 조금만 오픈하고 대화하다 보면 금방 푼수 같은 친구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한 번도 말해보지 않은 아줌마 간호사에게 근무 바꿔달라고 부탁하면서 시작된 대화에서 나는 아줌마가 젊었을 때 우울증으로 병원도 다니고 약도 먹었고, 지금은 다 이겨내서 괜찮다며 그렇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 자기 부모님들이 주신 사랑 때문인 것 같다며 아줌마에 어린 시절 부모님 얘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근데 정말 따뜻한 분들이셨던 것 같다!)
 
이번 환자 일을 겪으면서 또 한 번 느꼈다. 세상 차가워 보이고 도도해 보이는 애들이지만 ㅋㅋㅋㅋ 결국 이러한 첫인상도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으로 그냥 생겨버린 건 아닐까? 사실 누구보다 솔직하고 따뜻한 애들인데..
 
오랜만에 급격히 안 좋아지는 환자를 봐서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는데, 동시에 동료간호사들에게 위로받아 마음 따뜻한 모순적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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